좀비, 괴물, 고양이 외계인이 있는 놀이공원에 간다면? 조예은의 소설을 처음 읽었을 때 꿈의 세계로 떠나는 입장권을 받은 기분이었어요. 물론 그 꿈은 때로는 무시무시한 호러로 변하기도 하고, 달콤쌉싸름한 로맨스가 되기도 합니다. 이 세계에 들어온 이상, 손 잡은 연인이 젤리로 녹아내려도 놀라지 않을 만큼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합니다. 마지막 페이지에 이르면 이상하고 기이한 존재들이 나누는 사랑을 발견하게 될 거예요. 준비됐다면 지금 조예은 월드로 가는 문을 열어 보세요.
괴상하고 사랑스러운 존재들
드라마 <킹덤>의 K좀비나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의 물고기인간처럼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좀비와 귀신, 크리쳐. 조예은의 소설에도 이런 인간과 비인간을 넘나드는 존재들이 가득 등장합니다. 그는 영화 <괴물>을 보고도 '와, 저 괴물 너무 멋지다. 괴물이 주인공인 소설을 얼른 쓰고 싶다.'고 생각했대요. 꿈을 빨아먹는 악마와 인육을 먹는 괴물. 처음에는 기괴한 기분이 들지만 다가갈수록 친근하고 애틋해지는 캐릭터들이 잊을 수 없는 강렬한 인상을 남깁니다.
익숙한 클리셰를 깨며 나아간다
많은 여성 독자들이 조예은 작가의 소설을 읽고 스릴러와 호러 장르를 다시 읽게 됐다고 말해요. 조예은 작가를 만났을 때 비결을 물어봤죠. "처음 이야기를 쓰겠다고 결심했을 때, 여성에게 불편한 점이 없는 장르소설을 써보고 싶었어요." 그 역시 특정 사람들에게 불편함을 주는 소설을 읽을 때 답답함을 느꼈대요. 그래서 클리셰처럼 굳어진 여성 캐릭터나 관습적인 묘사 방식을 바꿔보고 싶었다고 해요. 그렇게 대상화되지 않는 사이코패스 여성 빌런, 도끼를 들고 운명을 바꾸는 푸른 수염의 아내가 탄생했죠. (채널예스 인터뷰)
극한 상황에서 빛을 발하는 사랑
"로맨스 너무 좋아해요."라고 고백할 만큼, 조예은 작가는 낭만적인 이야기를 좋아해요. 소설을 창작할 때도, 건조한 디스토피아보다는 이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사랑 이야기를 쓰려고 하죠. 물귀신과 숲귀신이 용기를 내어 친밀함을 나누는 「습지의 사랑」, 녹지 않는 눈이 내리는 디스토피아에서 서로를 알아보는 『스노볼 드라이브』. 어두운 절망 속에 있어서 더 절박하고 낭만적인 사랑 이야기. 서로를 향해 내달리는 순도 높은 마음을 조예은의 소설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어요.
"이 젤리 먹으면 절대로 안 헤어져요."
놀이공원에 간 커플이 한 남자가 주는 젤리를 받아 듭니다. 맛있게 젤리를 삼킨 사람들. 그런데 갑자기 비명소리가 들리고 사람들이 갑자기 끈적끈적한 젤리로 녹아내리기 시작합니다. 짧은 카드뉴스만으로도 독자들의 주목을 받았던 조예은의 첫 번째 장편소설입니다. 특히 좋았던 건, 이 소설이 한 장소에 모인 여러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를 옴니버스식으로 보여준다는 거예요. 다 맞춰야만 완성되는 퍼즐처럼, 마지막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는 미스터리 호러 소설입니다.
그동안 쌓아올린 조예은의 세계관이 펼쳐진 느낌이었어요. 소설 하나 하나가 다 재밌었지만, 소설들이 묶여 만들어지는 리듬도 특히 좋았어요. 초단편소설 「할로우 키즈」를 에피타이저로 먹고, 호러 로맨스, 디스토피아 소설 등 다채로운 장르물을 맛보면 마지막으로 정통 로맨스판타지의 분위기를 듬뿍 담은 「푸른 머리칼의 살인마」가 나오죠. 책을 끝까지 읽고 조예은 소설의 매력에 푹 빠졌다면, 내년 <월간 채널예스>를 기대해주세요. 취향 듬뿍 담은 에세이가 연재될 예정입니다.
"최근에 본 것 중에는 중국 드라마 <은비적각락 : 나쁜 아이들>이 제일 기억에 남습니다. 어른들에게 보호받지 못하고 방치된 아이들이 살인 현장의 증거를 습득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여기 나오는 사이코패스 캐릭터가 신선합니다. 결말로 갈수록 아이들 캐릭터의 미래가 성인 캐릭터와 겹쳐지는 부분도 재밌습니다. 아이들이 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지 따라가다 보면 충격적인 결말을 맞이하게 됩니다. 기묘한 음악과 정적인 연출도 스산한 분위기를 더해줍니다."
"저는 물건을 쌓아두는 스타일이거든요. 지금 당장 생각나는 건 편지들입니다. 생일 때마다 친구들과 주고받은 편지, 또 행사 때 독자분들께 받은 편지들이요. 가끔 우울하거나 일이 잘되지 않는 날이면 서랍을 열어서 편지를 읽습니다. 가장 위 칸에 쌓아두고 있어요. 그리고 물건은 아니지만, 집 한구석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식물들도 많이 아낍니다. 너무 잘 자라서 가끔은 두렵습니다. 조만간 화분을 갈아주지 않으면 저에게 소리를 지를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