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거리에 오직 두 사람만 있다는 것 / 영원한 행인인 두 사람이 오래된 거리를 걷는다는 것" 황인찬 시인의 시 「종로사가」의 한 구절입니다. 에디터 아키는 사랑을 축하받는 자리에 사람들을 초대하며 이 구절을 인용한 적이 있습니다. 황인찬 시인만큼 사랑의 여러 마음을 되풀이해서 쓰는 사람도 없을 거예요. 그리고 시 자체에 대한 사랑을 이렇게 다양한 방식으로 고백하는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시) 사랑꾼'이라 불러도 좋을, 황인찬 시인의 방으로 함께 가볼까요?
내일의 사랑을 믿으며
황인찬 시인의 시와 산문을 읽다 보면 사랑이라는 말을 정말 많이 볼 수 있어요. 무엇보다 "사랑해도 혼나지 않는 꿈"(「무화과 숲」)을 꾸는 과거의 어떤 순간들이 반복되어 그려지곤 해요.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에 대한 되새김이자 아직 오지 않은, 차별 없는 사랑에 대한 바람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시인의 신간에는 서명과 함께 이런 말이 적혀 있었어요. "내일의 사랑을 믿으며"
'시 영업사원'이라고 불러 주세요
황인찬 시인은 문학의 매력을 이야기하는 팟캐스트와 라디오를 여럿 진행해 왔어요. 최근의 소개글에서 "시를 이용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지 자주 고민한다, 시를 통해 타인과 깊게 만날 수 있기를 소망한다"고 적었고요. 채널예스와의 인터뷰에서는 심지어 "나는 시 영업사원이라는 정체성을 갖고" 있다고 이야기했어요. 그만큼 시를 사랑하고, 그 사랑스러움을 널리 '영업'하고자 애쓰고 있어요.
아이돌과 서브컬처는 나의 힘
그의 시는 대체로 고요한 인상을 주지만, 의외로 다양한 대중문화로부터 영향을 받는다고 해요. 책읽아웃에 출연했을 때 "일본 서브컬처를 좋아하며 SM 아이돌을 좋아한다. 『희지의 세계』를 쓸 때는 소녀시대의 <I Got a Boy>를 집요하게 들었다."고 소개되기도 했어요. 그의 작업실에 들어간다면 막 데뷔한 아이돌 그룹의 음악이 흐르고 새로운 일본 만화책들을 구경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되풀이되는 계절 속에 먹고 놀고 사랑하고
"사랑같은 것은 그냥 아무에게나 줘버리면 된다." 시인의 말에 적힌 이 문장 끝에 한참 머물러 있었어요. 사랑이 어디에든 도달하기를 바라는 의지로 느껴지기도 했고요. 전봉건 시인의 동명 시집에서 빌린 제목답게, 이 시집에는 되풀이되는 이야기들이 많아요. 사랑은 물론이고 지난 봄, 여름 같은 계절과 먹고, 놀고, 살아가는 일상이 그렇지요. 시인은 "이미지가 없고 관념이 없고 기쁨이 없"기를 바라며 썼지만 그래서 그밖의 모든 좋은 것들이 담긴 시집이에요.
황인찬 시인의 시 큐레이션이자, 그의 솔직한 이야기들이 담긴 첫 산문집이에요. <네이버 오디오 클립-황인찬의 읽고 쓰는 삶>에서 목소리로 전했던 원고를 다듬어 엮었고요. 이 책은 두 가지 커다란 즐거움을 줘요. 우선 그가 엄선한 아름다운 시 49편과 그 해설을 읽는 재미가 있고, 각각의 시를 통해 황인찬 시인의 내밀한 삶의 이야기를 읽는 재미가 있어요. 무엇보다 후자의 즐거움이 커서 황인찬 시인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선물처럼 느낄 거예요.
"저는 사실 포켓몬을 이십 년 넘도록 계속 좋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포켓몬에 대해 몇 번인가 글을 쓴 적마저 있는데요. 캐릭터는 현실을 과잉 반영하여 재현되는 법인데, 포켓몬에서 나타나는 그 과잉들이 우리 현실에 대한 흥미로운 생각을 끌어내고는 합니다. 물론 좋아하는 이유는 귀엽기 때문입니다."
"식물을 조금씩 집에 들이고 있습니다. 스스로 잘 자라서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는 식물을 보며 마음에 큰 위안을 얻고 있어요. 생명이 움트는 순간을 목격하는 것은 정말 큰 힘이 되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 다들 식물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