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하고 맑은 이야기' 최은영의 소설에 주로 붙어온 말입니다. 하지만 슬픔과 화에서 시작되는 이야기, 그 속에서도 사랑을 지키는 이야기가 최은영의 세계가 아닐까 에디터 융은 생각해요. 소설 속 인물들은 폭력과 차별을 예민하게 감지하고, 깊게 사랑하기에 상처를 주고받기도 합니다. 종종 소설을 읽다 서늘한 순간과 마주하게 되는 건 그 때문일 거예요. 하지만 함께 화내고 슬퍼하며 도달하는 건, 서로의 손을 잡아주는 섬세함이에요. '애쓰지 않아도' 사랑할 수 있는 세계를 꿈꾸는 최은영의 밝은 방으로 초대합니다.
그 시절의 서툰 마음까지 비추는
최은영의 소설은 학창시절의 복잡미묘한 감정들에 가만히 빛을 비추어요. 가장 순수한 시절이라고 하지만, 그 때만큼 "사랑과 증오를 선망과 열등감을, 순간과 영원을 얼마든지 뒤바꿔 느끼는"(「애쓰지 않아도」) 시기도 없을 거예요. 그러나 그것 역시 사랑의 한 모습이었음을 인물들은 뒤늦게 깨닫습니다. 그래서 최은영의 소설들은 시간이 흐른 후 나의 서툰 마음을 감싸는 편지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함께 분노하고 사랑하는 여성들
"왜 그렇게 예민해?" 일상의 폭력을 민감하게 감지하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본 말일 거예요. 하지만 소설 속 인물들은 그것이 상처이자 폭력이라고 말합니다. 그런 감수성이 가능했던 이유 중 하나는 '여성주의'의 영향이에요. 작가님은 대학시절 여성주의 교지 활동을 했어요. 대학교 1학년 겨울, 정희진 선생님의 강연을 듣고 세상이 완전히 바뀌는 경험을 했다고 하죠.(채널예스 인터뷰) 그런 뿌리 덕분에 우리는 『밝은 밤』에서 증조할머니, 할머니, 엄마, '나'로 이어지는 여성들의 서사를 만나게 됩니다.
콤플렉스와 약점의 힘으로 살아간다
작가님은 '콤플렉스와 약점이라고 여겼던 것들의 힘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해요. 채널예스 인터뷰에서 슬픈 일에 영향을 많이 받고 감정이 많아서 항상 힘들다고 했죠. 그렇지만 오히려 그런 성격 덕분에 글을 쓰게 됐고, 사람들의 관계를 더 조심스럽게 들여다보게 된대요. 약점을 없애기보다 장점이라 여기고 돌보는 것. 그런 마음이 있었기에 상처와 슬픔까지 섬세히 기록하는 소설이 탄생하게 된 것이 아닐까요?
작은 기억들로 이루어진 최은영 유니버스
최은영의 세계가 오롯이 담긴 짧은 소설집이에요. 작가님은 과거의 작은 일화도 세세하게 기억하는 습관이 있다고 하는데요. 이번 소설집에도 고기를 먹지 못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호시절」), 떠난 고양이에 대한 애도의 기억(「임보 일기」) 등이 담겨있어요. "사람의 마음은 좀처럼 지치지를 않나 봐요. 자꾸만 노력하려 하고, 다가가려 해요."라는 문장처럼, 쉽게 기억을 놓지 않고 타인을 오래도록 바라보는 인물들의 태도가 여운을 남겨요.
수많은 좋은 작품들 가운데, 에디터 융이 언제나 '숨은 명작'으로 꼽는 소설입니다. 1990년대 교지 편집부에서 만난 세 친구는 타인에게 가닿는 글을 쓰겠다는 열망으로 때로는 애틋하고 때로는 뾰족한 마음을 나눕니다. 시간이 흘러 그들은 다른 길을 가지만, 각자의 삶을 지켜보고 담담한 이해에 한 걸음 다가가요. 작가님은 "소설을 쓸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으로 "솔직할 것, 나의 가장 더러운 부분도 쓸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해요. 사랑하기에 상처 주었던 마음을 떠올리며,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은 뭔지 고민하게 하는 소설이에요.
"유튜브 박막례 할머니 채널을 즐겨 봅니다. 힘든 일을 겪으면 마음이 구겨지거나 꼬이기 쉬운 것이 저를 포함한 평범한 인간의 보통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고, 많은 고통을 지나왔으면서도 내면의 빛을 잃지 않고 밝게 빛나는 사람의 모습을 닮고 싶습니다. 박막례 할머니 채널을 즐겨 보며 그런 생각을 자주 하게 됩니다."
"바이엘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구입한 디지털 피아노입니다. 프리랜서여서 출퇴근의 구분이 없고 집에 있어도 계속 일을 하고 있거나, 일을 하지 않더라도 마음이 쉬지 못하는 상황이 많은데 피아노를 연습할 때는 그런 마음 상태의 연속을 끊을 수 있어서 좋습니다. 잠시나마 쉼을 주는 악기라는 생각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