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서수 작가님의 단편집을 기다리고 있어요." 황정은 작가는 채널예스와의 인터뷰에서 책읽아웃에 초대하고 싶은 인물로 이서수 소설가를 지목했습니다. 에디터 아키는 그때부터 이서수 작가의 작품을 읽기 시작했어요. 「미조의 시대」를 읽고 느낀 놀라움은 『헬프 미 시스터』를 읽고 확신으로 바뀌었어요. 반지하와 같은 도시의 그늘 속 노동과 여성, 연대를 그리는 이서수 작가는 우리가 가장 만나고 싶었던, 만나야 할 작가라는 확신.
지금, 여기의 일거리 줍는 사람들
이서수 작가의 소설을 읽으며 아키는 밀레의 그림 <이삭 줍는 여인들>을 떠올렸어요. 그의 소설 속 인물들은 지금, 여기의 도시에서 일거리를 찾는 사람들이에요. 구로디지털단지의 웹소설, 웹툰 회사에서 성인용 웹툰을 그리는 어시스턴트, 스마트폰으로 배송 플랫폼의 일거리를 받는 자차 배송 노동자, 음식 배달 노동자, 전업 주식 투자자, 플랫폼으로 자신의 사진을 팔거나 불법 도박을 영업하며 돈 버는 청소년 등 우리 곁에 존재하지만 잘 다뤄지지 않는 일의 세계를 그리고 있어요.
희미한 빛 속에서 나누는 따뜻한 마음들
현실에 발붙인 이서수 작가의 인물들이지만 늘 고단하거나 타인을 외면하는 차가움을 드러내지는 않아요. 오히려 그 반대죠. 빛이 들어오지 않는 반지하와 같은 현실 속에서도 서로를 챙기며 세심한 위로를 건네고 때로는 시와 웃음을 나누기도 해요. 이서수 작가는 책읽아웃 인터뷰에서 "자신도 평생 가난하게 살아왔지만 가난한 사람들이 무기력하거나 거칠기만 할 거라는 생각은 편견이며 오히려 반짝이는 따뜻한 순간들이 있다"고 말했어요.
들리지 않는 연주를 계속하며 버티다
이서수 작가는 등단 후 8년의 시간이 인생의 암흑기였다고 말해요. 청탁 없이 불안정한 노동을 하며 보낸 시간들이죠. 플랫폼 노동을 하기도 하고, 카페를 운영하다가 코로나19로 인해 접기도 하며 소설에서 자꾸 멀어지는 기분을 느꼈다고 해요. 하지만 소설 쓰는 일이 제일 재밌고, 그 순간만이 유일하게 행복하기에 끝내 소설을 놓을 수가 없었대요. 누가 읽어주지 않아도 쓰는 일은 마치 들리지 않는 연주를 계속하는 것과 같았고 그 경험은 장편 소설 『당신의 4분 33초』로 치환되었어요.
이 가족이 부디 행복해졌으면 좋겠어요
이서수 작가의 두 번째 장편소설이에요. 약물 성폭력 트라우마로 회사를 그만둔 여성과 그의 가족들이 저마다의 플랫폼 노동으로 고군분투하고, 또 서로를 위하는 이야기예요. 이서수 작가가 직접 경험한 자차 배송 등 이 시대의 새로운 노동이 사실적으로 그려지며, 성폭력과 청소년 이슈 등 다양한 문제의식을 내포하고 있어요. 그러면서도 입체적인 캐릭터와 가족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소설을 풍부하게 만들고, 특히 모녀 관계를 포함해 다양한 세대를 넘나드는 여성들의 연대가 빛나요.
이서수 작가의 단편 「미조의 시대」가 수록된 책이에요. 웹소설 회사의 경영관리직으로 면접을 본 '미조.' 그의 곁에는 성인 웹툰을 그리며 정수리 탈모를 겪는 '수영' 언니와 시를 쓰며 미조와 함께 사는 엄마가 있어요. 재개발을 앞두고 새로운 집을 보러다니는 모녀는 5천만 원으로는 지상의 집을 구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가요. "내일은 멀고 우리의 집은 더 먼" 상황은 지나칠 정도로 사실적이어서 마음이 아리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엄마가 쓴 시는 예상치 못한 감동을 줘요.
"요즘엔 김추자의 <무인도>라는 노래를 자주 들어요. 1974년에 LP로 발매된 노래인데, 지 금 들어도 정말 좋아요. 이 곡의 특징은 웅장한 분위기와 독특한 가사예요. 가사에 파도와 태 양, 별이 반복해서 나오는데, 듣다 보면 속세의 모든 일이 티끌처럼 느껴져요. 거친 파도가 연상되어 무더운 여름밤에 들으면 더위를 잠시 잊을 수 있고요."
"저의 책상 위엔 '포기 고양이'가 있어요. 이 고양이의 배엔 두 개의 날짜가 적혀 있는데, 글쓰기를 포기하고 싶었던 날이에요. 포기 고양이는 너무 힘들면 언제든 포기해도 괜찮다고 저를 다독여주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포기하기로 마음먹고 날짜를 적으면, 다시 글을 쓸 힘이 생겨요. 그래서 저에겐 정말 소중한 물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