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아키가 정지돈 소설가의 작품을 영업할 때마다 듣게 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왠지 다가가기 어렵다, 지나치게 무겁거나 진지할 것 같다.’ 하지만 그의 글을 읽는 것은 지적인 산책과도 같이 자유롭고, 재치 있는 농담처럼 즐거운 경험입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더 흥미로운 작가, 정지돈의 방으로 초대합니다.
좋아하는 게 너무 많아서
‘큐레이터형 소설가’로도 불리는 정지돈. 그가 관심을 가진 인물이나 책, 예술 작품들은 자신의 작품 안에서 분류되고 연결되며 재배치됩니다. 좋아하는 게 많고, 다양한 영역을 끊임없이 탐색하는 정지돈 작가이기에 매 작품마다 ‘그가 이번에는 어떤 것들에 관심을 가졌나’ 찾아 보는 재미가 있어요.
본능적으로 쓴다
채널예스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소설 쓸 때 계획을 안 세운다”고 말했어요. 의도와 이유보다는 본능에 따르고, “내가 왜 이 이야기를 쓸 수밖에 없는지 찾아가면서” 글을 써 나간다고 해요. 그래서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소설이 진행되며 자연스럽게 관습에서 벗어난 결과물을 볼 수 있어요. 독자 역시 마음을 열고 그 흐름을 따라간다면 더욱 즐길 수 있어요.
같이 걷고 농담하는 사이
정지돈 작가를 얘기할 때 그의 친구들을 빼놓을 수 없겠죠? 박솔뫼, 오한기, 금정연, 이상우 등의 작가와 늘 함께합니다. 그들은 서로의 첫 독자가 되어주는 동료이자, 같이 산책을 하고 농담을 나누는 사이예요. 정지돈의 글을 계속 읽을 수 있는 것은 어쩌면 서로를 지지하는 든든한 친구들이 있기 때문인지 몰라요.
그의 비범함이 궁금하다면
실존했던 인물 정웰링턴의 옅은 흔적을 토대로 한 이야기인데요. 구성이 매우 독특해요. 본인의 의지대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인물을 다층적으로 상상한 이야기가 전반부라면, 이와 비슷한 분량의 후반부에서는 정웰링턴을 불완전하게 상상할 수밖에 없는 소설가 화자의 이야기가 펼쳐져요.
"넷플릭스의 다큐멘터리 <고뇌: 슈칼스키의 삶과 예술>을 재밌게 봤습니다. 잊혀진 폴란드의 천재 조각가 스타니슬라프 슈칼스키가 1970년대 LA에서 활동하는 젊은 언더그라운 예술가들에게 발견되면서 일어난 일을 담은 작품인데요. 제목에서 느껴지는 무게와 달리 유쾌하고 흥미진진하게 볼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한 세기를 관통하며 종횡무진 살아온 슈칼스키 말년의 인터뷰는 요즘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기이함과 천재성으로 무장되어 있으니 기대해도 좋습니다."
“초록색 장정의 스마이슨 노트입니다. 올해부터 쓰기 시작했는데, 아직 적응을 못하고 있어요(종이가 너무 얇아요). 저는 이 정도 두께의 노트를 보통 2~3년 쓰거든요. 잘 적응해야 할텐데 걱정입니다. 노트를 쓰고 있다고 이렇게 공개적으로 말하면 자동 적응되지 않을까요? 이 글을 읽는 독자 분들도 자신의 물건에 잘 적응하는 한 해가 되길 기원합니다.”